내년 스마트폰 6.9% 더 비싸진다? AI 붐과 가격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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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한가지 새로운 흐름을 살펴보자.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최근 인공지능(AI)에 사용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생산에 집중하자 상대적으로 스마트폰에 쓰이는 D램의 공급량이 부족해졌다. 그 결과, D램의 가격이 오르면서 스마트폰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AI 붐'이 소비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건데, 우리가 살펴봐야 할 건 이뿐만이 아니다. 이른바 '반도체 슈링크플레이션'도 고려해야 한다.
![빅테크의 AI 경쟁이 스마트폰 가격 인상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사진 | 뉴시스]](https://imgnews.pstatic.net/image/665/2025/12/21/0000006413_001_20251221171614437.jpg?type=w860)
스마트폰 시장에 '가격 인상' 경보가 울렸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이하 카운터포인트)는 지난 17일 보고서에서 내년 스마트폰 평균판매가격(ASP) 인상률이 6.9%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9월 전망치(3.9%)보다 3.0%포인트 오른 수치다.
카운터포인트는 그 이유로 스마트폰 필수 부품인 메모리 반도체 'D램' 가격이 급등한 점을 꼽았다. 비싸진 부품값이 판매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거다. 실제로 D램 가격은 계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지난 11월 26일 보고서에서 3분기 일반 D램 계약가가 전 분기 대비 45~50%가량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카운터포인트는 D램값 인상에 따라 현재 저가형 스마트폰의 부품 원가(BoM)가 연초 대비 25.0% 오르고, 중가형과 고가형 BoM도 각각 15.0%, 10.0%씩 올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년 2분기엔 BoM이 전체적으로 10~15% 더 인상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소비자들이 주로 찾는 200달러(약 28만원) 이하의 저가 스마트폰 시장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했다. 왕양 카운터포인트 애널리스트는 보고서에서 "저가폰 시장에서 급격한 가격 인상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면서도 "비용을 감당 못한 제조사들이 제품 라인업을 정리하고 있으며, 실제로 저가 제품 출하량이 크게 줄어드는 현상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D램 가격이 급등한 건 단순히 물가가 올라서가 아니다. 전세계적인 '인공지능(AI) 붐'이 메모리 반도체 공급 구조를 기형적으로 만들고 있는 탓이다. 현재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메모리 제조사는 AI 칩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생산라인을 HBM 중심으로 개편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평택캠퍼스에 있는 D램 생산라인 일부를 HBM 전용 라인으로 전환한 건 대표적인 사례다.
그 결과, 일반 D램 생산량이 자연스럽게 줄어들어 가격 인상을 부추기고 있다. 카운터포인트가 보고서에서 D램 가격이 내년 2분기까지 40% 더 오를 수 있다고 전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빅테크 기업들이 벌이는 AI 패권 경쟁이 '가격 인상'의 형태로 스마트폰 소비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지금의 현상이 단순한 가격 인상에서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일부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치솟는 메모리 가격을 상쇄하기 위해 다른 부품의 사양을 슬그머니 낮추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가격은 그대로인데 제품 용량이 줄거나 품질이 떨어지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현상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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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포인트 바이 성하오 애널리스트가 17일 보고서에서 한 말을 들어보자. "일부 모델에서는 카메라 모듈과 디스플레이, 오디오 부품은 물론 메모리 구성까지 다방면에서 사양을 하향 조정하는 사례가 확인되고 있다. 아예 기존 부품을 재활용하거나 제품 포트폴리오를 간소화하는 경우도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신제품을 구매했음에도 예전 모델보다 품질이 떨어진 '마이너스 업그레이드' 제품을 받는 셈이다. 바이 애널리스트는 "이들 제조사는 이를 감추기 위해 고사양인 '프로(pro)' 모델 구매를 유도하거나, 디자인만 살짝 바꿔 신제품인 척 포장하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스마트폰 시장은 'AI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AI는 혁신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지만, 한편으론 스마트폰 가격을 밀어 올리는 변수로도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은근슬쩍 품질을 낮추는 제조사의 '꼼수'까지 포착되면서, 소비자의 선택 폭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 기술이 진보할수록 소비자의 부담은 더 커지는 이 역설은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